그래픽 디자인에서 UI/UX 디자인으로
Q. 영화님은 어떻게 커리어를 시작했는지 궁금해요. 처음부터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시작하셨나요?
저는 홍보 대행사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어요. 홍보 대행사의 업무를 간단히 설명하면, 고객사에서 기업 홍보 업무를 대행사에 맡기고, 대행사는 자료 조사, 마케팅, 홍보 등의 업무를 대신 처리해요. 회사에서 저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분들은 AE(Account Executive)라는 직무였어요. 저는 디자이너로서 외부 행사에 필요한 현수막부터, PPT, 뉴스레터 등등 다양한 종류의 그래픽 디자인 업무를 진행했죠.
그러다가 해외에서 커리어를 개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UI/UX를 다루는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직무를 바꾸기로 결심합니다. 그렇게 12년차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Q. 해외에서 일하려면 UI/UX 디자인이 더 유리할까요? 12년차가 된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직무를 바꿨던 당시에는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있는 UI/UX 디자인이 더 유리할 것 같았어요. 그리고 UI/UX 디자인은 우리가 직접 사용하는 프로덕트를 그리는 작업이니, 영어를 잘 못하더라도 의사 소통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잘못된 판단이었어요. UI/UX 디자인은 사용자의 니즈를 프로덕트에 녹이는 과정이에요. 팀원과 회의를 할 때, 그래픽 디자인은 시각적으로 설득한다면 UI/UX 디자인은 사용자 경험을 언어적으로 설득하는 역량이 꼭 필요해요. 따라서 영어로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으면 해외 커리어를 발전시키는 게 어려울 수 있어요.
보수적인 환경의 홍보 대행사 vs 자유로운 분위기의 스타트업
Q. 홍보 대행사에서 시작하셨군요. 그러면 신입 시절의 영화님을 한 단어로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천둥벌거숭이요. (웃음)
*천둥벌거숭이: 철없이 두려운 줄 모르고 함부로 덤벙거리거나 날뛰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출처: KBS WORLD)
선배들한테 ‘왜 이걸 해야 돼요? 이해 안 되는데.”라고 물어보기도 했어요. 반면 회사는 출근할 때 청바지를 못 입을 정도로 보수적인 곳이었어요. 그래서 선배들은 저를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워 하셨죠. 많이 혼나기도 했어요. 물론 혼내는 것도 애정이 있어야 하니까, 지금 생각하면 혼내주신 게 감사하기도 해요.
Q. 그러다 스타트업으로 이직하신 거네요. 자유로운 분위기의 스타트업에 비해 보수적이었던 홍보 대행사가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두 회사에서 다른 경험을 했고, 결과적으로 둘 다 제 커리어에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홍보 대행사에서는 비즈니스 매너에서 중요한 이메일 보내는 법을 배웠죠. 고객사를 대하는 업무 특성이 있어 격식을 차리는 게 중요했어요. 예를 들어 인사말, 참조(CC), 비밀참조(BCC) 같은 이메일 문법이 있겠죠. 신입 때는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최근에 창업을 시작하고 활동 범위가 커지면서 비즈니스 매너가 중요하다는 걸 많이 느껴요.
제가 스타트업만 다녔다면 주로 슬랙 메신저를 사용하니 이메일 보내는 법을 잘 몰랐을 수 있어요. 하지만 홍보 대행사에서 경험했던 덕분에 다른 회사에 갈 때도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Q. 어디든 배울 점이 있고, 그걸 어떻게 커리어에 적용할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다면 스타트업에서는 어떤 걸 배우셨나요?
한 명의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온전히 1인분의 몫을 다 해야한다는 점을 배웠어요.
첫 스타트업 면접은 더부스라는 피자집에서 봤어요. 면접관 분들도 어디서 들은 게 있으셨는지.. (웃음) 밥을 먹으며 면접을 보면 면접자를 더 잘 알게 된다는 맥락이었겠죠. 면접 합격하고 입사한 뒤 정말 가족 같은 느낌으로 일했어요. 그러다 6개월 후 회사가 망했죠.
이 때 저는 스타트업이 망하는 과정을 몸소 겪었어요. 비유하자면, 스타트업은 마치 개복치 같아요.
*개복치: 일명 ‘돌연사’ 물고기로도 유명하다. 햇살이 강렬해서 사망, 물이 너무 차가워서 사망, 새우껍질에 찔려 사망. 갖가지 창의적(?)인 이유로 죽는다고 알려져 있다. (출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과학향기)
정말 한순간에 망할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스타트업에서는 내가 1인분의 몫을 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어요. 이후로는 ‘내가 어떻게 하면 한 명의 디자이너로서, 아니면 한 명의 직장인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